안녕하세요? 지난 글에서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촉매의 정의와 작동 원리에 대하여 설명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 아직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요. 바로 구조적으로 동일하다는 서술의 의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 구조적으로 동일하다는 서술의 의미와 이것이 촉매의 어떤 역할에 영향을 주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본문을 읽기 전에 친절한 촉매 설명서 제 1탄! 정의와 원리 편을 먼저 읽고 오시면 촉매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답니다.
01
이성질체란 무엇인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하기 전에 ‘이성질체(異性質體·isomer)’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촉매의 정의와 마찬가지로 이성질체의 정의 또한 IUPAC(International Union of Pure and Applied Chemistry)에서 합의가 되어있습니다. IUPAC에서는 ‘이성질체’란, ‘서로 동일한 원소 구성(분자식)을 가지지만 분자 구조나 입체 구조가 달라 상이한 물리적·화학적 성질을 가지는 물질’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물질을 구성하는 재료는 같으나 구성하는 방식이 달라 여러 성질이 다른 물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성질체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위 그림 속 블록을 보면, 모두 블록 A, B, C가 재료인 것은 동일하나 결합 순서에 따라서 ABC, BCA, CAB 세 가지 종류로 나타납니다. 이때, 이 세 종류의 ABC, BCA, CAB를 구조 이성질체(structural isomer)라고 합니다. 이 구조 이성질체들은 구성 성분만 같을 뿐 화학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물질이기에 물리적 성질과 화학적 성질이 모두 달라 구분하기 쉽습니다.
02
다양한 이성질체의 종류
반면 구성 성분은 물론, 결합 순서도 동일해 물리적 성질과 화학적 성질까지 유사한 입체 이성질체(stereo isomer)도 있습니다. 위 그림을 보면 블록 A, B, C를 하나씩 사용하여 결합할 경우 나올 수 있는 12가지의 모양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중 결합 순서는 같지만, 블록 B와 C의 위아래가 뒤집혀 결합된 것들이 있죠? 이것이 바로 입체 이성질체입니다. 이 입체 이성질체들은 정밀한 실험이나, 입체적 구조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화학 반응이 아니라면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특히 입체 이성질체 중에서는 거울에 비춘 것과 같은 모양의 짝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서로 거울상 이성질체(enantiomer)라고 합니다. 이 거울상 이성질체들은 입체 이성질체 중에서도 특수한 경우로, 물리적인 특성과 화학적 특성까지 키랄성(chirality)*을 가진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 등의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서로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많은 물질이 이런 거울상 이성질체 중 한 가지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화학 반응이 아닌 생명 반응에서 차이가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사례의 대표적인 경우가 입덧 치료제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입니다.
거울상 이성질체와 탈리도마이드 사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Click!
*키랄성: 비대칭 탄소를 중심으로 결합해 있는 각가지의 원소 성분의 종류가 동일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바꾸어도 서로 겹치지 않는 유기 분자의 특성
03
입체 선택성으로 더 순수한 물질을!
그러면 이야기를 돌려 다시 촉매에 중심을 맞추어 볼까요?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던 촉매의 정의와 앞서 말한 이성질체의 종류에 따르면 구조 이성질체는 물질의 구조가 달라 서로 다른 물질이므로 촉매에 의한 반응 속도 증가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조만 같다면 촉매에 의한 반응 속도 증가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왼쪽 그림과 같이 블록 ABC의 형성을 촉진하는 촉매에 입체 선택성이 없다면, 블록 AB에서 블록 ABC를 만드는 것은 블록 C의 방향과 상관없이 두 가지 모양의 블록 ABC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촉매의 모양을 조금 바꾸어, 좀 더 길게 뻗어있는 모양을 생각해볼까요? 촉매의 모양이 길어졌을 뿐이지만 이것만으로도 화학 반응의 결과를 바꿀 수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을 보면, 길어진 촉매의 모양 때문에 블록 C가 아래로 긴 방향으로는 결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길어진 모양의 촉매를 사용한다면, 블록 C는 위로 긴 방향으로밖에 결합할 수 없고, 왼쪽 그림과는 다르게 위로 선 블록밖에 생성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입체적인 장애(steric hindrance)를 형성하여 한 종류의 입체 이성질체를 생성하는 능력을 입체 선택성(stereo-selectivity)이라고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촉매가 그저 반응 속도만을 빠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 선택성을 통해 좀 더 순수한 물질을 만들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입체 구조를 선택하여 물질을 생성하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04
원하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촉매의 입체 선택성!
앞서 이성질체에 관해 설명하며 잠깐 이야기했던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가 이러한 선택성의 중요함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입니다. 탈리도마이드는 임신 중 입덧 완화 효과가 탁월했지만 태아에 치명적 장애를 유발하는 거울 이성질체를 가진 약물이었는데요. 현재에도 이러한 거울상 이성질체를 간단히 분리하고 정제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약물을 합성할 때부터 한 종류만을 합성할 수 있다면 이성질체의 부작용 때문에 상용하지 못하던 여러 유용한 약물들을 부작용의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또한 입체 선택성은 촉매의 공간적 점유로 인한 반응 구조 제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특정 입체 구조를 가지는 물질을 생성하는 것만이 아니라 제한된 공간으로 인해서 생기는 고분자의 배열, 주사슬에서 뻗어 나온 가지의 방향, 고분자의 분자량과 분포 등의 화학 물질의 여러 특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게 어떤 촉매를 사용하여 폴리에틸렌(Poly Ethylene·PE)이나 폴리프로필렌(Poly Propylene·PP)을 생성하느냐에 따라, 축전지 분리막에 쓰이는 아주 튼튼한 플라스틱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전선을 감싸는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플라스틱이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두 편의 ‘친절한 촉매 설명서’를 통해 촉매가 반응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생성물의 제어도 할 수 있어 현대 화학 산업에서는 빠질 수 없는 요소라는 사실이 조금은 이해 되셨나요? 우리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촉매의 원리와 특성에 대한 생각해보는 유익한 시간이 되셨기를 바라겠습니다.
(글: 한화토탈 촉매연구팀 전용준 과장)
종합 케미칼 & 에너지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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