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합성 플라스틱, 베이클라이트 이야기
진정일 (고려대 명예교수, 전 IUPAC 회장)
✒️’월간 화학’은 과학자가 들려주는 화학 이야기로 외부 필진의 화학 칼럼을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맞아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음식점, 가게 점포, 은행, 사무실 등 사람들과 접촉하거나 한 공간에 머무르는 곳에서는 예외없이 투명 분리 플라스틱 유리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는 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의 계산대, 자급(self-serve) 매대에서 식품을 팔 때, 플렉시글라스로 만든 분리대나 진열대를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네일샵이나, 영화관에서도 플렉시글라스 칸막이로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
오늘은 이러한 플렉시글라스(Plexiglas)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01
플렉시글라스(a.k.a 아크릴 유리)란?
흔히 아크릴 유리라 부르는 플렉시글라스는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유리 대용 투명 플라스틱이다.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oly(methyl methacrylate), PMMA) 및 일부 공중합체*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주로 메타크릴산 메틸(Methyl Methacrylate, MMA)을 중합시키지만 아크릴산 에틸(Ethyl Acrylate, EA), 아크릴산 부틸(Butyl Acrylate, BA), 메타크릴산(MAA, Methacrylic Acid)등과 공중합시켜 내충격성과 열적 성질을 개선하기도 한다.
*공중합체(copolymer):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물성을 갖는 단량체로 구성된 고분자
플렉시글라스는 제품명이 대명사가 된 케이스인데, 대규모 화학회사인 ICI사가 퍼스펙스(Perspex), 듀퐁(DuPont)사가 루사이트(Lucite)라는 상품명으로 제품을 개발, 시판했지만 롬앤드하스(Rohm and Haas)사의 제품이 가장 유명해서, 이 회사가 제품명으로 내놓은 플렉시글라스(Plexiglas, 끝의 s가 하나다!)가 대명사가 되었다.
일반 유리의 투명도가 0.80-0.90인데 비해, 플렉시글라스의 투명도는 0.93이나 된다. 또한 유리와는 달리 충격을 받아 깨질 때 비산하지 않는(Shatter-proof) 특성이 있어 비행기의 창, 전투기 조종실의 투명 덮개, 아이스 하키장의 관중 보호창, 수족관의 대형 투명 탱크, LCD(액정 디스플레이) 스크린 등 다양한 용도에 플렉시글라스가 쓰여왔다. 미국 농가에 어마어마하게 크게 지어놓은 온실 전체가 플렉시글라스로 되어 있음을 보면서 감탄했던 옛 경험이 생각난다.
02
친구였던 두 사람, 화학기업 롬앤드하스 사를 설립하다
플렉시글라스를 만들고 롬앤드하스 화학 회사를 설립한 롬과 하스는 흥미로운 생애를 보냈다. 둘은 독일에서 태어났다. 발명가 오토 롬(Otto Rohm, 1876—1939)은 약학 공부를 시작했으나 튀빙겐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1901년에 ‘아크릴산의 중합 생성물’이라는 논문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따라서 플렉시글라스 아이디어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졸업 후에는 미국의 의약품 제조사인 머크(Merck)사에서 연구원으로 경험을 쌓은 후 슈투트가르트 시 가스 공장에서 근무했다.
그가 31살이었던 1907년, 친구 오토 하스(Otto Haas, 1872—1960)와 함께 독일의 에슬링겐 시에 롬앤드하스 사를 설립했다. 이어 하스는 필라델피아에 미국의 롬앤드하스를 설립하고, 동시에 독일 회사 본부도 확장해 사업을 활성화하기 적합한 공업 도시인 다름슈타트로 이전했다. 사업 초반에는 롬이 발명한 가죽 가공용 효소를 시판했고, 마침 가축 가공이 성행하여 사업이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롬앤드하스 사의 본격적인 성장은 플렉시글라스의 특허를 획득하고 시판하기 시작한 1933년부터 시작했다.
미국의 롬앤드하스 사는 현재 다우화학(Dow Chemical)으로 이전되었으며, 독일의 회사는 에보닉 데구사(Evonik Degussa)사에 흡수된 상태다. 롬은 63세에, 하스는 88세에 생을 마감했는데 두 사람은 평생 우정과 신뢰를 나누며 기업을 성공적으로 키워왔다.
03
다양한 산업에서 소비된 플렉시글라스
역사적으로 보면 플렉시글라스 산업과 소비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부터 눈부시게 확장되었다. 비행기(전투기) 조정실 투명 돔을 내충격성이 우수한 플렉시글라스로 제조하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잠수함의 조망창, 등대의 대형 렌즈 제조에도 플렉시글라스가 활용되었고, 이는 현재에도 마찬가지다.
전후에는 건축 응용에 플렉시글라스가 중요시 되었다. 전광판(PMMA는 여러가지 염료나 안료로 착색이 잘 된다), 유리 지붕, 현관 통로 등은 물론 화장실의 투명 혹은 반투명 칸막이까지 플렉시글라스는 일상 생활 곳곳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어 왔다. 환경분야에서도 솔라 패널(태양광 수집용)의 유리 대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통신 분야에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광통신 시대가 열리면서 광섬유를 통한 빛의 전파 통신으로 기가비트 속도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고분자 광섬유(Polymer Optical Fiber, POF)는 기존 광통신 유리섬유보다 생산이 쉽고 가격이 저렴하다. 단면이 1mm인 섬유의 96%를 차지하는 중심부를 PMMA가 이루고 있으며, 표면은 굴절률이 낮은* 플루오르화(또는 불소화) 고분자가 피복재(cladding material)로 사용되다.
* 피복재의 빛 굴절율이 중심 소재의 굴절율보다 낮아야, 통과하는 빛이 산란되어 광섬유 밖으로 탈출하지 못한다.
04
우수한 생체 적합성으로 의료, 미용 분야에서도 활약 중
PMMA는 인체 조직과 비교적 우수한 친화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의료 분야에서도 중요하게 쓰인다. 특히 안과에서는 백내장을 일으킨 수정체 대신 눈에 넣는 경질 렌즈로 사용된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안과의사 해롤드 리들리(Harold Ridley, 1906-2001)는 전투 비행사들의 눈에 박힌 PMMA 파편이 유리 파편과 달리 염증성 거부반응을 보여주지 않은 점에 착안하였다. PMMA(영국 ICI사의 Perplex)로 만든 대체 렌즈를 1949년 세인트 토마스 병원에서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레이너(Rayner)라는 회사에서 제조했기 때문에 흔히 리들리-레이너 렌즈라 불렸으며, 미국에서는 1952년에 필라델피아의 윌스 안과 병원(Wills Eye Hospital)에서 처음으로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현재 백내장 수술에서 인공수정체 임플란트는 일반화되었다.
정형외과에서는 잃은 뼈 부분을 리모델링할 때와 임플란트를 고정할 때 PMMA가 용해되어 있는 액체 단량체(monomer) MMA 용액을 중합 개시제와 함께 주입하고 가열 중합시켜 뼈 접합제(cement)로 사용한다. 이런 용도에는 의사의 숙련된 기술이 요구된다. 인공 치아도 주로 PMMA이다. 미용 성형 수술에서는 미세한 PMMA가 들어 있는 생물학적 유체를 피부 밑에 주사해 주름과 흉터를 줄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용도 외에도 플렉시글라스는 반도체 가공 공정(전자빔 리소그라피*(electron-beam lithography), UV, X-선), 일렉트로닉 기타, 베이스, 드럼, 인공 손톱 등 음악과 미용 영역에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리소그라피: 미세하고 복잡한 전자회로를 반도체 기판에 그려 집적회로를 만드는 기술.
요즈음 ‘지식을 시장으로!’(Knowledge to the Market!) 라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실험실에서 발견한 새 지식을 유용한 제품 개발에 사용해 소비자들이 즐겨 사용할 신제품을 만들어 시판하게 하는 소위 이행 또는 중개기술(translational technology)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표현이다. 이런 현대 기술사적 사조에서 보더라도 오토 롬과 오토 하스는 지난 글에서 언급한 베이클랜드와 함께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 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화학이 우리들과 얼마나 가까이 함께하고 있는가를 일깨워준다.
이번 글에서 다룬 플렉시글라스 내용은 한가지 제품이라도 그 특성과 가능한 용도 개발을 통해 얼마나 넓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가 된다. 특히 고분자 재료중에는 이런 예가 많아 고분자 과학의 매력을 더욱 크게 느끼게 한다.
종합 케미칼 & 에너지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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